은행 창구에서 ‘어머니 본인이 오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냥 돌아 나오는 순간, 이 문제가 시작됩니다. 위임장을 받아서 다시 가도 결과는 같습니다. 위임장은 맡기는 사람에게 판단능력이 남아 있을 때만 효력이 생기기 때문에, 이미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뒤에 받아 온 위임장은 창구에서 받아주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년후견인은 사건본인(부모님)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해서 선임받습니다. 접수부터 심판까지 대체로 4~6개월, 정신감정이 들어가면 6개월 이상 걸립니다. 비용은 인지대 5,000원과 송달료는 소액이지만, 법원이 명하는 정신감정료가 수십만 원에서 200만 원 안팎까지 나올 수 있어 이 예산을 미리 잡아두셔야 합니다. 실제로 절차를 멈춰 세우는 것은 서류 몇 장이 아니라 이 감정료와 형제들의 의견서입니다. 이 글은 2026년 8월 현재 기준으로 정리했고, 인지·송달 수수료와 감정료는 법원별·연도별로 조정되므로 접수 전 해당 법원 종합민원실에서 최종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성년후견인 제도란 무엇인가 — 핵심만 3줄
첫째, 질병·장애·노령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을 위해 법원이 대신 결정해 줄 사람을 정해주는 제도입니다(민법 제9조 이하, 2013년 7월 시행). 여기서 방점은 ‘지속적’에 찍힙니다. 수술 직후 섬망처럼 일시적으로 판단이 흐려진 상태는 대상이 아닙니다.
둘째, 남아 있는 판단능력의 정도에 따라 성년후견·한정후견·특정후견으로 갈립니다.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라 심판문에 적히는 내용 자체가 다릅니다. 성년후견은 원칙적으로 재산행위 전반을 후견인이 대리하고, 한정후견은 ‘1,000만 원을 넘는 예금 인출’처럼 동의를 받아야 할 행위가 심판문에 목록으로 열거됩니다. 특정후견은 ‘○○동 아파트 매각 사무에 한하여 1년간’처럼 사무와 기간이 못 박힙니다. 여기에 본인이 건강할 때 미리 공정증서로 후견인을 정해두는 임의후견(후견계약)도 있습니다.
셋째, 후견인이 된다고 재산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이나 그 대지를 팔거나 임대·전세권 설정·저당권 설정을 하려면 가정법원의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합니다(민법 제947조의2 제5항). 요양원비를 마련하려고 부모님 아파트를 내놓는 경우가 흔한데,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허가부터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허가 없이 한 처분은 뒤집힐 수 있습니다.
자주 오해하시는 부분인데, 성년후견은 ‘치매 진단을 받으면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장기요양등급 판정과도 별개의 절차입니다. 등급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후견은 법원이 판단합니다. 요양등급 1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법원이 후견을 자동으로 열어주지 않고, 반대로 요양등급이 없어도 후견은 개시될 수 있습니다.
2. 신청·진행 절차 단계별 정리
순서대로 보시면 이렇게 진행됩니다.
- 1단계 · 유형 정하기 — 의사소통이 거의 안 되고 재산관리 전반을 대신해야 하면 성년후견, 일부 판단은 가능하고 큰 계약만 통제하면 되면 한정후견, 부동산 매각 등 특정 사무 한 건만 필요하면 특정후견을 검토합니다. 다만 법원은 청구한 유형에 묶이지 않습니다. 성년후견으로 냈는데 심리 과정에서 ‘본인이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고 보면 한정후견으로 개시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니, 청구서에 유형을 못 박기보다 부모님의 실제 상태를 사실대로 적는 편이 낫습니다.
- 2단계 · 청구권자 확인 — 본인, 배우자, 4촌 이내 친족(사촌까지), 검사,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이 청구할 수 있습니다. 자녀는 당연히 포함됩니다. 돌봐줄 친족이 없거나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지자체장이 청구하는 공공후견(치매안심센터에서 상담)이 있습니다.
- 3단계 · 관할 법원 접수 — 부모님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 가정법원이 없는 지역이면 지방법원 본원·지원에 심판청구서를 냅니다. 청구인 주소지가 아니라 사건본인 주소지가 기준입니다. 서울 사는 자녀가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청구하면서 서울가정법원에 접수했다가 이송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주민등록을 요양원 주소로 옮겨 두었다면 그 주소가 기준이 됩니다.
- 4단계 · 심리와 의사 확인 — 법원이 사건본인의 진술을 듣습니다. 거동이 어려우면 판사나 조사관이 병원·자택을 직접 방문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선순위 상속인 등 친족들에게 의견을 조회합니다.
- 5단계 · 정신감정 — 법원이 감정의를 지정하고 감정료 예납을 명합니다. 지정된 병원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감정을 받아야 하는데, 거동이 안 되면 방문감정이나 기록감정이 가능한지 재판부에 미리 물어보셔야 합니다. 감정 기일 잡는 데만 한두 달이 걸리기도 해서, 이 단계가 전체 기간을 좌우합니다.
- 6단계 · 심판과 확정 — 심판문을 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즉시항고가 없으면 확정됩니다. 형제 중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14일이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 7단계 · 후견등기 — 확정되면 법원이 직권으로 후견등기를 촉탁하고, 이후 발급받는 후견등기사항증명서가 은행·관공서에서 쓰는 신분증 역할을 합니다. 등기 반영까지 통상 1~2주가 더 걸립니다. 심판문만 들고 은행에 가면 대개 되돌아오게 되니, 증명서가 나온 뒤에 움직이십시오.
- 8단계 · 취임 후 재산조사 — 후견인은 지체 없이 재산을 조사하고 취임일부터 2개월 안에 재산목록을 작성해야 합니다(민법 제941조). 이 조사가 끝나기 전에는 급한 채무 변제 정도를 빼면 함부로 재산에 손대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후에도 법원이 정한 주기로 후견사무 보고서를 냅니다.
3. 준비해야 할 서류와 조건
법원마다 요구 서식이 조금씩 달라 접수 전 해당 법원 홈페이지의 ‘성년후견 심판청구서’ 양식을 내려받는 것이 정확합니다. 공통으로 요구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서류 | 메모 |
|---|---|---|
| 신분·가족관계 | 청구인·사건본인의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상세), 주민등록표 등본 | 4촌 이내 친족임을 증명해야 하면 제적등본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
| 의학적 소명 | 진단서 또는 소견서, 최근 진료기록, 신경인지검사(MMSE·CDR 등) 결과 | 최근 6개월 이내 자료여야 현재 상태로 인정받기 쉽습니다 |
| 재산 소명 | 재산목록,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 예금 잔액증명서, 연금·급여 내역 | 후견인 권한 범위를 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
| 친족 의사 | 선순위 추정상속인들의 동의서 또는 의견서(인감증명 또는 본인서명사실확인서 첨부) | 가장 자주 누락되는 항목입니다 |
| 후견 이력 | 사건본인의 후견등기사항부존재증명서 | 가정법원·등기소 창구 또는 대법원 후견등기시스템에서 발급 |
의학적 소명에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MMSE 점수를 두고 ‘몇 점 이하면 통과’ 같은 기준을 찾으시는 분이 많은데, 법원이 점수표로 자르지 않습니다. 같은 20점대라도 혼자 통장을 관리하다 사기를 당한 이력이 있는지, 집을 찾아오지 못한 적이 있는지 같은 생활 정황이 함께 적혀 있어야 판단 자료가 됩니다. 진단서에는 병명만 한 줄 적혀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의사 선생님께 ‘재산관리 능력에 관한 소견’을 한 문장이라도 넣어달라고 부탁드리는 편이 좋습니다. 예금 잔액증명서는 발급 기준일이 찍히므로 접수 임박해서 떼는 것이 깔끔합니다.
비용은 인지대 5,000원(가사비송 사건 기준)과 송달료가 기본입니다. 송달료는 2025년 기준 1회분 5,200원에 당사자 수와 회분을 곱해 예납하는 방식입니다. 청구인·사건본인에 형제 셋까지 당사자가 다섯 명쯤 되면 몇만 원대에서 시작한다고 보시면 되고, 2026년 조정 여부와 정확한 회분은 접수 법원의 납부 안내로 확인하십시오. 여기에 정신감정료가 별도인데, 실무상 대체로 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에서 예납 명령이 나옵니다. 감정 기관과 항목에 따라 편차가 크므로 금액을 미리 단정하지 마시고, 예납 명령서에 적힌 금액을 기준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경제적 사정이 어렵다면 접수 시 소송구조를 함께 신청할 수 있고, 기초생활수급자인 치매 어르신은 치매안심센터의 공공후견사업으로 비용 부담 없이 후견인을 연결받는 길도 있습니다.
4. 자주 막히는 지점과 해결법
가장 많이 틀리는 지점은 ‘진단서만 내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치매 진단서를 첨부했으니 한두 달이면 되겠거니 하고 접수했다가, 몇 주 뒤 감정료 100만 원을 예납하라는 명령을 받고 형제들끼리 누가 낼지 정하느라 두 달이 그냥 흘러갑니다. 예납을 미루는 동안 사건은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사이 요양원비는 자녀 카드로 계속 나가고, 정작 부모님 통장에 있는 돈은 손도 못 댑니다. 그 돈을 나중에 정산받으려면 영수증을 다 모아둬야 하니, 접수한 날부터 대납 내역을 따로 적어두시는 편이 낫습니다.
해결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청구서를 낼 때부터 감정료를 예산에 넣어두고, 부담이 크면 소송구조 신청서를 같이 제출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의식이 없거나 중증이 명백해 감정 실익이 없는 경우에 감정을 생략해 달라는 의견서를 내는 것입니다. 이때 최근 입원기록, 요양병원 간호기록, 뇌 영상 판독지, 신경인지검사 원본을 함께 붙이면 판단 자료가 됩니다. 특히 간호기록에 적힌 ‘의사표현 불가’, ‘와상 상태’ 같은 일상 기록이 진단서 한 장보다 무게가 나갈 때가 있습니다. 생략 여부는 법원의 재량이라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자료가 두터울수록 기간이 줄어듭니다.
두 번째로 흔한 지점은 형제 중 한 명의 의견서를 빠뜨리는 것입니다. 법원은 선순위 상속인 전원에게 의견을 묻는데, 연락이 끊긴 형제가 있으면 조회 송달만으로 두세 달이 그냥 지나갑니다. 접수 전에 미리 연락해 의견서를 받아두거나,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 사정과 마지막 주소를 청구서에 적어 법원이 곧바로 다음 절차를 밟게 하는 편이 빠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두실 것이 있습니다. 형제 사이에 재산을 두고 다툼이 드러나면, 법원이 자녀 대신 변호사·법무사 같은 전문가후견인을 선임하는 쪽으로 기웁니다. 그러면 매년 후견인 보수가 부모님 재산에서 나갑니다. 의견서를 받는 과정에서 감정 싸움을 서면에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결국 손해로 돌아오는 이유입니다.
세 번째는 급한 일이 확정 전에 닥치는 경우입니다. 요양원 입소 계약이나 수술 동의처럼 몇 달을 기다릴 수 없는 사안이면, 심판 확정 전이라도 가사소송법상 사전처분으로 임시후견인 선임이나 필요한 처분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급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입소 계약서 초안이나 병원의 수술 일정표처럼 날짜가 박힌 자료를 붙여 담당 재판부에 사정을 소명하셔야 움직입니다.
마지막으로, 후견인이 되면 부모님 계좌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거주 부동산 처분은 법원 허가 사항이고, 사용 내역은 정기 보고 대상입니다. 부모님 돈과 내 돈을 섞어 쓰면 나중에 후견인 변경 사유가 됩니다. 특히 ‘어차피 나중에 내가 상속받을 돈’이라는 생각으로 생활비에 보탰다가 보고서 심사에서 지적받는 사례가 실제로 있습니다. 처음부터 후견 전용 통장을 따로 만들어 입출금을 한 계좌에서만 처리하고, 병원비·요양비 영수증은 월별로 봉투에 모아두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5. 정리 및 오늘 쓸 수 있는 체크리스트
- 부모님 주민등록상 주소를 확인하고 그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이 어디인지 검색합니다. 요양원으로 주소를 옮겼는지도 함께 확인합니다.
- 다니시는 병원에 전화해 최근 6개월 이내 진단서와 신경인지검사 결과 발급을 예약하고, 재산관리 능력에 관한 소견을 넣어달라고 요청합니다.
- 가족관계증명서·기본증명서(상세)·주민등록등본을 청구인과 부모님 것으로 각각 준비합니다.
- 부모님 명의 부동산·예금·연금을 한 장에 적어 재산목록 초안을 만듭니다.
- 형제자매에게 연락해 동의서 또는 의견서를 받고, 인감증명서나 본인서명사실확인서를 함께 챙깁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은 마지막 주소와 사정을 메모해 둡니다.
- 인지대 5,000원과 송달료 외에 감정료 예납 예산을 별도로 잡아두고, 누가 얼마씩 낼지 형제들과 미리 정합니다. 부담이 크면 소송구조 신청을 함께 준비합니다.
- 치매 어르신이고 형편이 어렵다면 관할 치매안심센터에 공공후견 가능 여부를 먼저 문의합니다.
- 접수한 날부터 부모님을 위해 대신 낸 돈의 영수증을 따로 모으기 시작합니다.
- 심판문을 받으면 14일을 세어 확정 시점을 달력에 표시하고, 확정 후 후견등기사항증명서를 발급받습니다.
- 후견인 취임 후 2개월 안에 재산목록을 제출한다는 일정을 미리 적어둡니다.
이 글은 2026년 8월 현재의 일반적인 절차를 정리한 것으로, 개별 사건의 법률 자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수수료와 감정료, 제출 서식은 법원과 연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접수 전 관할 가정법원 종합민원실이나 대한법률구조공단(국번 없이 132)에서 최종 확인하시고, 장기요양등급이나 요양비 관련 사항은 국민건강보험공단(1577-1000)에 별도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